플랜트 구매/조달 엔지니어 (Procurement Engineer)로 현장에서 뛰는 분들이라면, 사우디 아람코(Aramco) 프로젝트의 공급망 이야기에 관심이 있을겁니다. Vision 2030과 IKTVA(In-Kingdom Total Value Add)라는 화려한 간판 아래, 수조 원짜리 프로젝트가 줄줄이 쏟아지는데 왜 현장은 점점 더 숨 막힐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아람코는 신규 벤더 발굴에 비 호의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9COM 기반의 기승인 업체 중심 정책에, 현지 업체 성장을 위해 강제로 발주해야 하는 업체까지 지정해 놓고선, “새로운 파트너 찾아봐”라는 말은 터무니없는 농담처럼 들립니다. 이 글을 읽고 나면, 아람코 프로젝트에 뛰어들기 전 두 번, 세 번 고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플랜트 엔지니어 여러분, 오늘은 그 현실을 공유해보겠습니다.
9COM과 강제 지정 업체: 신규 벤더 발굴의 이중 장벽
아람코 프로젝트에 발을 담가본 엔지니어라면 9COM(Commodity Code)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겁게 다가오는지 알 겁니다. 이건 아람코가 승인한 자재와 업체를 관리하는 시스템인데, 문제는 이 9COM에 등록된 기승인 업체를 중심으로 모든 게 돌아간다는 겁니다. 신규 업체를 발굴하고 싶어도 아람코는 “이미 우리 리스트에 있는 업체 써!”라며 손사래를 칩니다. 게다가 현지 업체 육성을 위해 강제로 발주해야 하는 업체까지 지정해 놓았으니, 선택의 여지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현실적으로 신규 업체를 발굴하려면 수개월씩 걸리는 절차를 감내해야 합니다. 아람코의 공급망 담당자와 이야기해보면, “승인 프로세스가 워낙 까다로워서 신규 업체 등록은 꿈도 꾸지 말라”는 말을 농담처럼 합니다. IKTVA 정책은 현지 업체의 참여를 늘리자는 취지인데, 정작 그 현지 업체들이 기술력도, 납기 관리 능력도 부족한 경우가 태반이라 실무자 입장에선 머리만 아프죠.
신규 업체 발굴 절차: 끝없는 관문의 연속
신규 벤더를 아람코 프로젝트에 투입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요? 아람코 공식 자료(‘Material Supplier Guide’)와 업계 경험을 토대로 단계별로 정리해보면, 그 복잡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됩니다. 아래는 대략적인 절차입니다.
1. 사전 자격 심사(Pre-Qualification) : 업체가 아람코의 품질 기준과 IKTVA 요건을 충족하는지 서류로 확인. 이 단계에서 자격 미달 업체는 바로 탈락.
2. 기술 평가(Technical Assessment) : 샘플 제출과 현장 실사를 통해 기술력을 검증. 문제는 이 과정에만 2~3개월이 기본.
3. 9COM 등록 신청 : 승인된 자재와 업체를 9COM 시스템에 등록하려면 추가 서류와 아람코 내부 승인이 필요.
4. 최종 승인(Final Approval) : 발주처와 협의 후 최종 OK 사인을 받는데, 여기서 또 몇 주씩 지연되기 일쑤.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해도 실제 발주까지 수개월이 걸립니다.(대부분 발주처가 유사한 절차를 가지지만 아람코는 상대적으로 진행이 더딤) 이전에 인근 현장 실무자는 “신규 업체 하나 등록하려다 프로젝트 일정이 꼬여서 차라리 기존 업체로 손해 보면서 진행했다”고 했습니다. 아람코의 비합리적인 태도는 여기서 빛을 발합니다. “우리가 지정한 업체로 충분하다”는 그들의 자신감은, 현장에서 품질 불량과 납기 지연으로 고생하는 우리에겐 그저 터무니없을 뿐입니다.
주* 아래는 아람코의 "Material Supplier Guide" (2020년 1월 버전)로, 공급업체 등록 및 자격 요건, 절차 등을 안내하는 공식 가이드입니다. PDF 형식이므로 다운로드 가능하며, 신규 업체 발굴 및 승인 절차 (사전 자격 심사, 기술 평가 등)의 시본 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개 문서임)
현지 업체 강제 지정: 정책의 배경과 현실의 괴리
아람코가 왜 이렇게 현지 업체를 강제로 밀어붙일까요? 그 배경은 Vision 2030과 IKTVA 정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우디 정부는 석유 의존 경제를 탈피하고 현지 산업을 키우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고, 아람코는 이를 실현할 핵심 플레이어로 나섰죠. 그래서 특정 프로젝트마다 “이 업체에 발주를 넣어야 한다”는 식으로 강제 지정 업체를 정해놓는 겁니다. 예를 들어, 대형 플랜트 프로젝트에서 현지 강재 업체나 밸브 업체가 필수적으로 포함되곤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지정된 현지 업체들은 대부분 기준에 한참 못 미칩니다. 한 엔지니어는 “지정 업체에서 납품받은 배관이 규격을 안 맞춰서 결국 재작업에 들어갔다”며 한숨을 내쉬더군요. 아람코는 이런 문제를 알면서도 “현지 업체를 키우는 게 우선”이라며 눈을 감습니다. (PMT도 인정하는 사실이나 정부 정책이니..) 그 결과, 품질은 떨어지고 일정은 밀리고, 비용은 치솟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실무자의 증언: 아람코의 비호의적 태도
현장에서 뛰는 엔지니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아람코의 태도가 얼마나 실무를 힘들게 하는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40대 중반의 한 플랜트 엔지니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규 업체를 추천하면 아람코 담당자가 ‘9COM에 없으면 논의도 안 한다’며 쳐내는데, 그럼 우리가 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지정 업체 쓰라고 강요하는데, 그 업체가 납품을 제때 못하면 우리가 잘못이 되는 구조예요.” 또 다른 50대 엔지니어는 “수개월 걸리는 승인 절차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기존 업체로 손해를 감수하는 게 낫다”며 체념 섞인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런 증언들은 아람코가 신규 벤더 발굴에 얼마나 비호의적인지를 보여줍니다. 발주처가 “우리 시스템이 완벽하다”며 고집을 피우는 동안, 현장은 혼란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셈입니다.
IKTVA와 9COM의 억압적 결합: 숨 막히는 현실
IKTVA와 9COM이 합쳐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 두 정책은 서로를 강화하며 공급망의 유연성을 완전히 묶어버립니다. IKTVA는 현지 조달 비율을 높이라는 압박이고, 9COM은 그 현지 업체 중에서도 아람코가 이미 승인한 업체만 쓰라는 족쇄입니다. 아람코 자료(Doing Business with Saudi Aramco’, 2018 (다운로드 링크)에 따르면, IKTVA는 현지 업체 참여를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정작 그 업체들의 역량은 따라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2020년쯤 A 화학단지 프로젝트에서 신규 업체를 투입하려던 EPC 업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9COM 등록과 IKTVA 준수 문제로 승인이 지연되며 결국 기존 지정 업체로 돌아섰고, 결과는 납기 지연과 품질 불량으로 이어졌죠. (사실 굳이 이런 예를 들지 않아도..) 이런 사례는 아람코의 억압적 시스템이 실무에 부담을 주는지 잘 보여줍니다.
아람코 벤더 종류 비교
아람코의 벤더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뉩니다. 아래 표로 간단히 정리해봤습니다.
종류 | 한글 이름 | 영어 이름 | 특징 |
기승인 업체 | 기승인 업체 | Approved Vendor | 9COM 등록, 아람코 승인 완료, 발주 우선 순위 높음 |
강제 지정 업체 | 강제 지정 업체 | Mandated Local Vendor | IKTVA 정책으로 지정, 현지 육성 목적, 품질·납기 및 품질 문제 빈발 |
신규 업체 | 신규 업체 | New Vendor | 발굴 절차 복잡, 승인 수개월 소요, 아람코 비호의적 태도로 활용 어려움 |
이 표만 봐도 알 수 있죠. 신규 업체는 사실상 게임에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아람코 프로젝트의 신규 벤더 발굴은 이렇게 막힌 문 앞에 서 있는 기분입니다. 9COM과 IKTVA의 억압적 결합, 강제 지정 업체의 무능, 발주처의 비호의적 태도까지 모두가 EPC와 플랜트 엔지니어들의 어깨를 짓누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지정 업체들의 역량 문제를 더 깊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과연 이 억압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함께 고민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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